Ван Вероника, сохранившая традиции корё сарам

고려사람의 풍습을 잘 지켜온 반 베로니카

다음 주 화요일에 예정된 출국 일정으로, 토요일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베로니카 반과의 약속장소인 누런갤러리로 향하였다. 다소 이국적인 외모와 가죽재킷을 입은 그녀는 가까이 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현재 미술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 활동을 많이 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활동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작가는 고려인 3세로 1969년 타슈켄트에서 고려인인 어머니와 중국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외조부모가 원동에서 처음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해오셨기에 고려 말을 아셨고, 어머니와 아버지 또한 고국의 언어를 잘 알았으며, 집에서는 러시아어를 함께 사용하였다고 한다. 1960년경에는 소비에트 연방과 중국의 경계가 흐려서 민족끼리 잦은 왕래를 할 수 있었는데,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사이의 국경 또한 이와 마찬가지의 사정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중국인이었던 베로니카의 아버지는 우즈베키스탄에 건너오게 되었다. 당시에 어머니는 대학을 진학하여 더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1966년 4월 타슈켄트에서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발이 묶여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트랙터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아버지와 회계사로 일하던 어머니가 결혼을 하게 되어 베로니카를 낳았다. 당시 소비에트의 문화 자체가 ‘다양한 민족의 혼합’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화적 갈등은 딱히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지만, 가정의 재정적인 형편상 어려서는 미술 공부를 할 수 없었다.

타슈켄트 교육 대학교에서 회화-그래픽을 전공하면서부터 그녀의 미술에 대한 꿈을 펼칠 수 있었다. 학부 생활동안 회화와 조각은 물론 다양한 미술을 아우를 수 있는 광범위한 미술 공부를 하였다. 우즈벡 고려인 화가들에게서 두드러지는 ‘우즈베키스탄 고유의 무늬’에 관하여 묻자, 대학시절 내내 이를 연습하였는데 이는 우즈벡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것이자, 불운한 것으로부터 보호를 해준다는 부적의 의미로 그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또한 염색이 안 되게 할 부분에 왁스를 발라 무늬를 내는 염색법인 바틱(batik,밀랍염색)을 응용한 우즈베키스탄 전통 작품(Suzani, 자수로 그림을 새겨 넣은 직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소개해주기도 하였다. 이는 1953년 스탈린 사후, 중앙아시아의 소수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활하고자 예술을 응용한 사례 중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시골의 의사가 마을의 온갖 환자를 돌보듯, 자신이 다녔던 학과에서는 미술의 다양한 실기를 공부해볼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그러면서 ‘민족적 혼용’의 문화가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며, 자신 또한 문화적 혼종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이러한 것에 익숙한 반면, 상대적으로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고려사람 본연의 것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고 귀띔을 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두 지역 모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집단농장이라는 거주 지역을 벗어나게 된 고려인들에게 자신들의 종족적 정체성을 지키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한다는 것은 도태되는 것이고, 다른 문화권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에게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 될 것이다. 1990년도 졸업 후 결혼과 일로 인해서 그림 그리는 작업을 거의 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베로니카가 몇 안 되는 작품 중 ‘동양’을 소재로 그려낸 점이 특별해 보였다. 삿갓을 쓰고 머리를 길게 땋은 남자가 강(強), 한(韓), 화(和)라는 카드를 들고 서 있으며 오른 쪽에서는 용이 날아오르고 있다. 이 그림은 땅과 공간의 해석을 담은 풍수(feng sui)와 별자리를 기초로 하여 그렸다는 작가의 말에서, ‘동양적’ 요소를 추구하려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황새(laylak)가 갓난아이를 가져다준다는 우즈베키스탄 전통 동화에 대한 삽화가 있었다. 아버지가 비록 중국인이셨으나, 민족적 풍습과 관습은 한국적인 것을 많이 따라주었고, 며칠 전에 치른 손녀의 돌잔치 때도 한복을 입혔다며 자랑스럽게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보이듯 베로니카는 고려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한국적 관습을 잘 따르는 노력을 보이고 있었다. 작품이 적은 점이 아쉬웠으나, 고려인이라는 것에 긍지를 가지고 타슈켄트에서 미술 선생으로 살아가는 그녀가 당당해보였다.

소비에트시절 여성은 법적으로 완전한 평등을 인정받아 다양한 경제 및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여하는 분위기 덕택에, 그녀의 어머니 또한 트랙터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고 들었다. 어엿한 사회의 일원인 직업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자긍심을 가지는 동시에, 생업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찾아 열심히 정진하는 두 모녀의 모습에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전선하
홍익대 미술학과 예술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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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сточник: https://koreans.kz/events/382–.html?lang=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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